影印本(木板本). - 서울 : 景仁文化社, 1994. - 【韓國歷代文集叢書(1146-1152)】.
7冊 : 23 cm.
조선 후기의 문인인류주목의 시문집이다. 류성룡의 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 류 심춘이며, 아버지는 좌의정 류후조, 어머니는 연안 이씨로 부사 이재연(李載延)의 딸이다.
1813(순조 13)년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태어났다. 전통적인 가학을 전수하여 젊은 시절에 이미 학행(學行)을 갖추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일찍이 과거에 뜻을 접고 향리에서초가 집을 짓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1854(철종 5)년경상도관찰사 신석우(申錫愚)가 고기와 술을 보내오자 되돌려보냈다. 1866(고종 3)년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정윤우(鄭允愚)의 추천으로 의병장이 되었으나 적이 물러나 곧바로 의진을 파하였다. 1867년 고종이 동몽교관, 장악원주부, 공충도도사(公忠道都事)를연이어 제수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868년에는 계정(溪亭)에 선비들을 모아 『소학(小學)』과「백록동규(白鹿洞規)」를 강하고 상읍 례(相揖禮)를 행해 사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류도수를 비롯한 320여 명에 달하는 제자를 배 출하였다. 류주목은 조선 후기 영남의 퇴계 학통에 속하는 유학자로 성리학․예학․역사학․ 보학(譜學)에 두루 통달했으며, 문장과 서법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전례유집(全禮類輯)』은 사례(四禮)․오례(五禮)․사상례(士相禮)․거가잡의(居家雜儀)를 두루 참고 해 완성한 예학의 집대성이다. 『사칠논변(四七論辨)』은성리학에 대한 선유들의 견해를 취합 하여 편찬한 것이다. 『조야약전(朝野約全)』은 당쟁에 대한 글들을 시대 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해동보(海東譜)』는 씨족의 계보를 밝힌40책 분량의 역작이다.
이 문집은 서문과발문이 없어 간행 연도가 확실하지 않다. 문집 중 「의상육조소(擬上六條疏)」 는 아버지가 1872년 판중추부사로 치사(致仕)한 뒤 아버지를 대신하여 올린 것으로, 당시 조 정의 문란한 정치기강과 열강의 진출에 대비하는 방책을 근성학(勤聖學)․엄사금(嚴邪禁)․득현 재(得賢才)․수무비(修武備)․청사로(淸仕路)․정민지(定民志) 등 여섯 조목으로 나누어 설명하면 서, 사교를 배척하고 파벌을 없애며 국방을 엄하게 할 것을 요구하였다. 비록,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지은 것이지만 평소 지니고 있던 정론(政論)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잡저 중 「계당강 회절목(溪堂講會節目)」에서는 17조목으로교육목표와 강학활동의 절차 및 행동규범을 구체적 으로 기술하였다. 「제문(祭問)」에서는 제례에 대해 가례․남계예설(南溪禮說)․사계예설(沙溪禮 說) 등에서 논의되지 않았으나 실제로 행사하는 데 없어서는안 될 사항들을 가려서, 자기의 견을 첨가하여 문답형식으로 설명하였다.그 밖에도 이준(李埈)의 공로와 학행을 열거하여시호를 내려 줄 것을 청한 「창석이선생청증시소(蒼石李先生淸贈諡疏)」와박세채의 문집을 간행하게 된 경위를 설명한 「남계집서(南溪集序)」가있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가 수포에 공헌한 김각(金覺)의 사실을 칭찬한 「석천김선생창의사실발(石川金先生倡義事實跋)」과 효자 강천(姜天)의효행을 기록한 「서강효자사(書姜孝子事)」가 있다.